바쿠만 - 만화가의 눈으로 바라본 만화가의 세계는?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 솜씨가 지독하게 없는 나조차도 습작으로 몇몇 조악한 단편을 만들어 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만화학과를 전공하거나 문하생 생활을 마친 지망생들도 만화가 아닌 게임계 쪽으로 진출하길 선호한다고 하니 국내 만화계의 열악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드래곤볼]의 상륙이래 국내 만화시장을 점령한 일본만화의 독주는 어지간해서는 멈추지 않을 듯 싶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의 만화가들은 웹툰으로 방향을 틀거나 아예 일본 만화계를 노크해 활동 무대를 바꾸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만화계의 저력은 국경을 초월한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는건 꽤나 낭만적이면서 멋진 일일 거라고. 과연 그럴까?
피말리는 심리게임의 진수를 선보였던 [데스노트]의 오바 츠쿠미/오바타 타케시 콤비의 신작 [바쿠만]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만화가의 입장에서 만화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발상의 전환이 돋보이는 [바쿠만]은 현 일본 만화계의 시스템, 그리고 신인 등용문의 만만찮은 문턱 등 경험에 의한 사실적인 배경으로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 集英社/Tsugumi Ohba+Takeshi Obata.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두 소년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만화가의 길을 걷다가 요절한 삼촌처럼 그림에 소질이 있고 심지어 연애성향까지 똑같은 모리타카, 그리고 전교 1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수재이면서 엉뚱하게도 만화 스토리 작가의 꿈을 가진 슈진. 어딘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년의 만남은 이들의 목표를 '잘팔리는 만화가'가 되는 것으로 바꾸어 놓기에 이른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성우의 꿈을 가진 수줍은 소녀, 아즈키의 존재는 모리타카와 손발이 오그라드는 알싸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스토리의 흐름을 한층 핑크빛으로 수놓는다.
무엇보다도 [바쿠만]의 백미는 만화가라는 직업군의 허상과 현실에 대한 묘사다. 아마도 작가 본인들이 직접 경험했을 것이 분명한 신인 작가로의 등단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실제 일본 굴지의 만화사인 슈에이샤(집영사)의 소년 점프지에 데뷔해 인기 만화가로서 대박을 터트리려고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는 주인공들의 피눈물나는 고전분투가 대단한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 集英社/Tsugumi Ohba+Takeshi Obata. All rights reserved.
한때 만화가를 꿈꿨던 이들에게나 혹은 만화책이라면 무조건 사족을 못쓰고 달려드는 매니아들에게 있어 [바쿠만]은 꽤나 공감할 만한 구석이 많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코믹하고 [데스노트]보다 가벼운 스타일이지만 간간히 무시못할 묵직한 메시지가 양념처럼 등장하며, 근성물과 성장 만화로서의 성격도 상당부분 내포하고 있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것인가, 아니면 독자들이 원하는 만화를 그릴 것인가. 아직 연재 초반에 불과하지만 소위 '왕도(王道)'와 '사도(邪道)'를 놓고 고민하는 작가들의 공통적인 딜레마를 다룬 2권의 테마처럼 과연 [바쿠만]이라는 작품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작가 스스로의 선택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부디 [데스노트] 때처럼 김빠지는 엔딩으로 마무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바쿠만]의 모든 일러스트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集英社/Tsugumi Ohba+Takeshi Obata.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아울러 [바쿠만]의 국내 판권은 ⓒ 대원씨아이(주)에 있습니다. 정식 발매판을 이용합시다.
바쿠만 BAKUMAN 1 -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대원씨아이(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