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워즈 - 호소다 마모루의 독특한 감성 판타지
아직까지도 스튜디오 지브리 하면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러나 최근 [벼랑위의 포뇨]를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긴 했어도 동시에 위태로움을 보여준 이유는 지브리의 건재함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장기 독재의 기반위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최적의 후계자 콘도 요시후미를 잃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직접 현업에 복귀하며 아슬아슬하게 지브리의 명성을 지탱해 왔으나 후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항상 일이 꼬였다.
애당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호소다 마모루가 스폰서인 도쿠마 서점의 입김에 의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을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떫떠름한 성공 이후 지브리측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를 선택했고, 지브리의 입성에 실패한 호소다 마모루는 달랑 3장짜리 기획서를 들고 카도카와에 찾아가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조용히 명예회복을 노렸다. 결과는 호소다 마모루의 압도적인 판정승. 이제 호소다 마모루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견줄 수 있는 극장가의 유일한 대항마로 떠올랐고, 그의 차기작 [썸머워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있어 기대치가 큰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 Madhouse/Kadokawa Publishing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썸머워즈]는 호소다 마모루의 독특한 창의력이 고스란히 발휘된 작품이다. 어찌보면 기존 일본 아니메의 클리셰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긴 하는데, 그러한 익숙함을 복합적으로 버무려 새롭게 창조한 느낌이다. 이를테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투라든가, 조금 유치한 고교생 남녀의 연애담이 뒤섞인 영웅담을 아니메 특유의 과장된 유머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호소다 마모루는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두었다.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전형적인 히어로물에 향토색 짙은 일본의 대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을 결합시켜 한편의 퓨전식 가족 드라마처럼 구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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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SF와 코미디, 드라마, 거기에 액션까지 가미된 복합장르적 성격을 보여주는 [썸머워즈]의 메인은 세상을 구하는 한 소년(혹은 소녀)이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다. 평범한 일상속에 지구의 멸망이라는 황당한 사건이 녹아들어간 설정은 다소 부자연스럽긴 하지만,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섬세한 디테일과 개성만점의 캐릭터들(적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소모적인 캐릭터가 거의 없다는건 정말 놀랍다), 그리고 무엇보다 탄탄하게 잘 짜여진 스토리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톡톡튀는 아이디어의 향연은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OZ라는 사이버 공간의 풍부한 시각적 표현도 일품이지만, '고스톱'을 극의 대반전을 위한 장치로서 이용한 점은 아주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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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나 상반된 두 개의 큰 줄거리(OZ에서의 반란사건과 시골마을에서의 생일잔치)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얼개가 다소 느슨한 감도 없지 않으나 적시적소에 배치된 코미디의 상승효과로 관객들은 미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관용적인 마음으로 넘겨 버리게 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이라는 단순명료한 구도보다는 보완과 상호인정이라는 우회적인 교훈점을 가미시킨것도 [썸머워즈]의 또다른 의외성이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큼의 감동과 작품성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이지만 [썸머워즈]의 오락성은 근래 보아온 극장용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단연 최고다. 상영내내 초점이 안맞아 흐릿한 스크린과 망가진 센터 스피커의 찍찍거리는 음향 에러도 모자라, 한창 극에 몰입될 즈음 투사 각도를 한바퀴 돌려서 재조정하는 바람에 자막이 몽땅 날아가는 몰상식한 영사사고가 연발하는 가운데서도 관객들이 별 불평없이 엔드 크래딧에서 열렬한 박수를 보낸 점은 [썸머워즈]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느낀 만족도가 어느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증거다.
P.S: 나도 아이폰을 갖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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