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 극장판 13: 칠흑의 추적자 - 은색탄환, 부활의 신호탄을 쏘다
금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최대의 화제를 불렀던 작품이 개막작인 [뮤]나, 부천 초이스 선정작인 [영혼을 빌려드립니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무술 액션물 [메란타우] 같은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칠흑의 추적자]였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대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던 영화제의 성격상 두 번에 걸친 상영 모두 광속의 매진사태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극영화가 주류를 이룬 Pifan의 작은 이변이자, [명탐정 코난]이란 브랜드가 지닌 소리없는 파워를 입증한 결과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의아했던 것은 [칠흑의 추적자]가 [명탐정 코난] 극장판의 13번째 작품으로서 어찌보면 진부한 시리즈의 끝물에 다다른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코다마 켄지에서 야마모토 야스이치로 감독으로 넘어오면서 시리즈는 심한 부침을 겪었다. 특히나 지속적인 하향세를 보이던 가운데 11번째 극장판이었던 [감벽의 관]은 극단적으로 허술한 내러티브를 선보이며 시리즈의 존폐위기까지 몰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칠흑의 추적자]가 일본내에서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며 시리즈를 기사회생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는 점이 국내 관객층의 구미를 잡아당긴 것일까. 어찌되었건 Pifan에서 티켓확보에 실패했던 나로서는 그 실체를 지금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 GOSHO AOYAMA/DETECTIVE CONAN COMMITTE, All Right Reserved.
결론부터 말해 [칠흑의 추적자]는 지금껏 만들어진 [명탐정 코난] 시리즈 중 제3편 [세기말의 마술사] 이래 단연 독보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갖는 미덕은 원작속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들러리로서가 아니라 촘촘한 내러티브에 위치해 (실로 오랜만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명탐정 코난]의 시리즈가 언젠가는 거쳐가야 할 '검은 조직'과의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우선 [칠흑의 추적자]는 주인공 코난(쿠도 신이치)의 원맨쇼가 아니라, 조연 캐릭터의 비중이 대폭 늘어난 작품이다. 내러티브도 한층 복잡해졌다. 메인 스토리는 사건현장에 마작패가 발견되는 연쇄살인사건이지만, 이를 둘러싼 경찰 내부의 검은 조직원을 색출하는 서브플롯과 날개에 V자로 테잎이 붙여진채 발견되는 장수풍뎅이 사건의 연관성이 곁들여져 이야기를 보다 세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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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이 겪는 위협은 시리즈 사상 최악의 한계점에 다다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의 내부첩자에 의해 '코난=신이치'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위급상황에서 든든한 역할을 해주었던 마취총이나 킥력증강 슈즈, 축구공 벨트 등의 아이템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진과 워커의 사정권안을 넘나들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뿐인가. 숙적인 냉혈한 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라스트씬의 액션은 '은색탄환' 코난의 반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베르무트가 묘한 미소를 띄우며 사라지는 장면으로 보건데 차기작에서는 검은 조직과의 본격적인 대결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어쩌면 이 지루하기 짝이없는 장수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을 선택지는 만화책이 아니라 극장판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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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칠흑의 추적자]의 성공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극장판 코난은 스케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탄탄한 각본과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는 연출만 있다면 아무리 시리즈가 계속되더라도 여전히 재미있다는 점이다. 액션과 서스펜스에 치우쳐 정작 미스테리물로서의 퍼즐에는 다소 취약한 경향이 없잖아 있긴 하나 한동안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야마모토 야스이치로는 이제서야 코난 극장판에 대한 감각을 찾은 듯 하다. 바야흐로 [명탐정 코난]의 화려한 부활이다.
P.S
1.[명탐정 코난] 극장판이 정식으로 개봉했던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6편인 [베이커 거리의 망령]도 정식개봉) 유독 이번 작품이 관심을 끌었던 요인중의 하나는 아직 Divx 파일이 나오지 않은 비교적 따끈따근한 최신작이라는 점일 게다. 부탁이니 다음 편도 부디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개봉해서 관람의욕을 꺾는 일이 없게 해주길 바란다.
2.솔직히 [명탐정 코난]의 광팬들이 이렇게 많은줄은 첨 알았다. 조조로 봤음에도 극장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관객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친구들끼리 놀러온 초글링들이었지만 의외로 필자처럼 혼자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제법 되었다. 특히 내 옆에 앉은 처자. 남친이 없어서인가 모처럼 집에서 쉬는 아부지를 끌고나온 모양이던데, 너무나도 몰입해서 즐겁게 보는 모습이 꽤나 기특했기에 계속 쫑알쫑알 거렸음에도 전혀 밉살스럽지가 않더라. 역시 매니아들과 영화를 본다는 건 이런 재미지. (근데 솔까말 정말 놀라웠다. 나조차도 놓치면서 본 장면 하나하나, 작은 힌트 하나하나에서 추후의 일들과 상황을 거의 90% 이상을 맞춰내더라. 어이어이. 뭐야 이 여자, 무섭잖아.)
3.본문에는 빼먹었으나 지금까지 나온 [명탐정 코난] 극장판 중에서 가장 진지하다. 특히나 엔드 크레딧 이후의 쿠키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유일하게 유머가 완전히 배제된채 끝을 맺는다. 확실히 이번 작품은 감독이 죽기아니면 살기로 작정하고 신경써서 만든 티가 난다.
4.더빙판의 대사를 자막으로 옮긴 탓인지 몇몇 실수가 눈에 띈다. 가령 하이바라를 '장미'로 번역한 것이나 소노코를 '보라'라고 번역한 것은 자막검수때 누락된 부분이리라. 제발 DVD에서는 수정되서 출시되길 바랄 뿐.
* [명탐정 코난: 칠흑의 추적자]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GOSHO AOYAMA/DETECTIVE CONAN COMMITTE.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스크린샷의 일부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홍보팀으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