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 우리는 누구나 풍선달린 집을 꿈꾼다
어린시절은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집이 가난하건 부유하건간에,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간에 누구나 자신만의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짓누르기 시작하며 현실과의 타협을 끊임없이 강요받다보면 그러한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일부가 되어 버리고 만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신혼의 단꿈에 빠져 사는 것도 잠깐.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미치도록 일하다가 늙어 버린 다음에는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는 안정되었을지언정 용기와 건강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짧다면 짧은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천재'라는 수식어보다 더 걸맞는 표현이 있다면 몇 개라도 붙여주고 싶은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 [업]은 꿈을 실천하는 어느 노인의 모험을 바탕으로 픽사 특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수작 애니메이션이다. 거대한 비행선을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가를 동경하던 소년이 자신과 같은 뜻을 품은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을 함께하다가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린시절의 꿈을 실천한다는 이야기는 얼핏보기엔 허황되면서도 전혀 유치하지 않은 놀라운 내러티브를 선보인다.
ⓒ Disney-Pixar. All rights reserved.
픽사 애니메이션의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의 작품이 결코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인데, 일반적인 가족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들러리로 따라가는 형국을 띄는 것이라면 픽사의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에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 싶다. 더욱이 그런 면에서 [업]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10편의 픽사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가장 어른들을 위한 작품에 가깝다.
그 증거로서 [업]은 의인화된 동물이나 모험심 가득한 아이와 같은 애니메이션의 단골 캐릭터 대신, 아침에 일어나 허리 한번 제대로 펴는 것도 버거워하는 78세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때문에 말하는 강아지(정확히는 말하는 기계를 목에 메단)들의 등장이나 겁없는 동양인 꼬마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업]의 캐릭터가 지닌 현실적인 이미지는 남다르다. (동양인 소년과 옹고집 노인네의 조화라고? 그래 당신이 생각한 것이 맞다. [업]은 분명히 어떤 면으로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렌토리노]를 연상시키는 면이 없잖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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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달린 집으로 상징되는 모든 이들의 꿈이 칼이라는 자그마한 노인에 의해 실현되는 찰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울컥하는 감정이야말로 [업]이 가진 드라마의 힘을 예고하는 순간이다. 칼과 러셀의 모험이 시작되면서 펼쳐지는 활극의 요소와 유머는 기존 픽사 작품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업]에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주제의식은 분명 어른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어떤 부분에 이르러서는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의 경우 다소 지루해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힌다.
이번 [업]의 과감한 일보는 그간 CG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존재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온 픽사가 이제는 자신들의 영역을 실사 드라마에 버금가는 것으로 넓히려는 야심마저 느끼게 만든다. 이미 작년, 아니 재작년 [라따뚜이]를 보며 픽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혀를 내두르며 멍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섰던 이래 이제는 이들이 그 어떤 작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을 보게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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