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 소문,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
루머의 루머의 루머 -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내인생의책 |
'자살'. 200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드는 최대의 화두다. 한때 인기정상을 달리던 톱탤런트에서부터 일국의 전직 대통령까지 극단의 선택으로 연달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자살. 왜 자살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일까? 주변 사람들이 만약 그들의 결심을 미리 알았더라면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소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사소한 허풍으로 시작된 루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기야 한 평범한 여학생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게 되는 메커니즘을 그럴싸하게 묘사한 책이다.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장난일지언정, 정작 그 돌에 맞는 개구리는 생사가 달린 문제라 했던가.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서술방식의 독특함이다. 해나 베이커는 자기가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사람들의 리스트를 뽑아 자신의 육성녹음이 담긴 테잎을 전달하도록 만든다. 그 테잎에는 자살 동기의 발단이 된 구체적인 사건들과 관련자들의 이름이 담겨있다.
평소 해나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던 주인공 클레이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그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해나는 죽었다. 그런데 해나가 죽고나서 2주 후, 7개의 테잎이 담긴 상자가 그에게 배달된다. 해나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에게만 보내지는 해나의 육성테잎. 그 테잎이 해나를 짝사랑했던 자신에게 보내졌으니 이 얼마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일인가.
이 책은 테잎에 녹음된 해나의 나레이션과 이를 듣는 클레이의 심경, 행동을 교차시킨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독자가 실제로 해나의 테잎을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서술은 생동감 넘치고 감정이입이 용이하다. 자살을 막을 수 있었던 단 한번의 기회를 놓쳐 버린 클레이가 절규하는 부분에 이를때면 소설을 읽는 독자들 또한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 정도니까.
더불어 이 작품은 자살자가 자살을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상황과 그런 심경의 변화를 통해 드러나는 외부적인 징후, 그리고 이를 무심코 넘겨 버리는 주변사람들의 무관심을 통해 한 사람의 죽음에 얼마나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는가를 역설한다.
이 작품의 장르를 딱히 규정하기란 힘들다. 우울하긴 하지만 틴에이저의 순정을 담았다는 면에서 연애소설의 느낌도 나지만 사건의 진상과 해나의 리스트에 올라간 이름이 하나씩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마치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든다.
소설속 인물인 해나 베이커는 비록 실존했던 인물은 아니지만 그 가련한 소녀의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생생한 캐릭터의 묘사 덕분인지 그녀의 자살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헐리우드 앤딩을 너무 많이 봐서일까? 마지막 순간에 짠하고 '실은 나 안죽었어' 하며 나타나는 결말을 은근히 기대했던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