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1990년대 한국 극장가, 10년의 흐름을 기억하십니까?

페니웨이™ 2007. 11. 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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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들면서 멀티플렉스 극장의 확산, 한국영화의 대내외적 성장 등으로 영화계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 한국영화 위기론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변수가 작용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국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시대를 돌파했고, [트랜스포머]는 외화부문 1위 기록을 갱신하며 극장가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이제 2000년 이전의 1990년대의 극장가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불과 10년사이의 짧은 기간이지만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 중 어떤 점을 직접 경험하였는지를 추억속에서 떠올리시길 바란다.


 

    1990년  


1990년의 최대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장군의 아들] 열풍이 아닐까. 흥행이라곤 담쌓고 지냈던 임권택 감독이 신인이었던 박상민, 신현준 등을 과감히 캐스팅해 당시 크게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의 열풍을 주춤하게 만들고, 한국식 액션의 모본을 제시한 결과물이다. 반면에 KAL기 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신상옥 감독의 야심작 [마유미]가 비행기 폭파씬에 쓰인 특수효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장군의 아들]에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한편, [우묵매미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주연을 맡았던 박중훈이 명실공히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배우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외국영화로는 [다이하드2], [로보캅2]등 대작들의 속편이 여전히 인기를 이어갔으며, UIP직배반대의 여론속에서도 2급 개봉관들을 점령하면서 [블랙레인], [언터쳐블] 등 직배사 영화들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1년  


그 어떤 해 보다도 수작들이 터져나왔던 한 해. [터미네이터2], [의적 로빈후드], [나홀로 집에] 등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오는 대작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더군다나 케빈 코스트너의 작품이 연달아 3편 (늑대와 춤을, 의적 로빈후드, 꿈의 구장)이나 개봉되었는데, 이 때문에 극장가에서는 '올 여름 무슨 영화를 보던지 관객들은 케빈 코스트너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홍콩 느와르와 카지노 영화의 열기에 이어 서극 감독의 [황비홍]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정통 무협영화의 부활을 알렸다.  한국영화계에서는 작년 최대의 화제작 [장군의 아들2]를 임권택 감독이 직접 연출하여 흥행 행진을 이어갔다.


 

    1992년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 전세계에 광풍을 일으킨 한해,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면, 한국 영화시장에도 서서히 자본력이 투입된 작품들이 속속 제작되었는데, 당시 로맨틱 코미디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던 최민수와 인기 정상의 심혜진이 만난 [결혼 이야기]가 대기업의 자본력을 앞세워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현승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영상미가 돋보인 [그대안의 블루]가 선을 보인 것도 1992년의 주목할 만한 점이다.

[황비홍]에 이어 신개념 무협물의 장르를 연 [동방불패]는 또한명의 걸출한 스타 임청하를 배출했으며, 작년에 이어 케빈 코스트너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J.F.K]에 이어 뭐니뭐니해도 잊을 수 없는건 겨울에 개봉했던 [보디가드]. 추운 겨울철 연인들의 감성지수를 뜨겁게 달구었던 간지절정의 작품으로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라디오 방송을 탔다. (이 영화를 같이 봤던 그녀, 지금 어디서 뭐할까나..)


 

    1993년  


[장군의 아들] 삼부작으로 빛을 발한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로 드디어 홈런을 쳤다. 지금 기준으로는 우스울지 몰라도 당시로선 100만 관객이라는 기념비적 흥행기록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그 기록을 세운 영화의 장르가 일반 상업영화가 아닌 '판소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다는 것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또 한편의 흥행 영화로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가 개봉되었다. 강우석 감독은 프랑스 영화인 [마이 뉴 파트너]를 표절했다는 의혹속에서도 흥행 가두를 달리며 충무로의 영향력있는 감독 반열에 올랐다.

외화에서는 [도망자]와 [사선에서]가 인기를 얻었으나, 뭐니뭐니해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만큼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없었다. 한때 [쥬라기 공원]의 영화 한편이 벌어들이는 수익과 현대차 수출량을 비교해 가며 영화사업의 부가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기도 했다.


 

    1994년  


정형성을 탈피한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한해.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은 한국형 느와르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매력있는 두 남녀 이정재와 신은경을 내세운 배창호 감독의 [젊은 남자] 역시 타락한 청춘의 비극적 말로를 보여주었다.

한편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심한 외설성 시비에 휘말리며 한국 영화의 성적표현수위를 두단계 올려놓는 역할을 했으며,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는 그간 얌전했던 한국영화의 대사에 '욕'을 첨가함으로서 이후의 한국영화들의 판도를 확 바꾸어 놓았다.

외화부문에서는 혜성처럼 등장한 코미디 배우, 짐 케리의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에이스 벤츄라], [덤 앤 더머], [마스크]등이 비디오가게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1995년  


왕가위 감독의 역작 [중경삼림]과 [동사서독]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평단의 극찬을 한몸에 받은 한해였다.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이 만든 [레옹]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한때 레옹 모자가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 영화계는 [닥터 봉]으로 영화계에 진출한 한석규라는 어마어마한 대어급 배우가 등장한 시기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 영화계의 최고의 성과는 홍경인이 주연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다. 또한 [모래시계] 열풍을 등에 업고 로맨틱 코미디에서 액션물로 무대를 옮긴 최민수가 열연한 [테러리스트]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



    1996년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기에 들어선 시기.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김기덕 감독의 [악어]는 구태연한 관습에서 벗어난 독특한 작품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면 흥행 영화의 스케일도 다변화되었는데, 훗날 최고의 흥행기록을 쏘아올린 강제규 감독이 한석규, 심혜진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기용해 [은행나무 침대]라는 한국식 환타지를 완성시켜 톡톡히 재미를 봤다.

한편 외국 영화들의 맹공이 만만치 않았는데, [더 록], [트위스터], [이레이저], [미션 임파서블], [히트] 등 내노라하는 블록버스터급 작품들이 대거 개봉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다. 관객들로서는 최고의 한해였던 셈.


 

    1997년  


한석규라는 배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해였다. 데뷔이래 승승장구하던 그가 [초록 물고기], [넘버3], [접속]등 무려 3편의 작품을 내놓으며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일구어냈다. 특히 [접속]은 그간 [서편제]가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갈아치우며 전국 150만 관객돌파에 성공했다. PC통신을 매개체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조명한 이 작품은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사이버 공간으로 점차 확대되어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김희선, 전도연, 장동건, 유오성 등의 거물급 신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특히나 김성수 감독의 [비트]는 만화를 각색한 영화로서는 드물게 뛰어난 연출력과 영상미를 선보이며 명작급의 반열에 올랐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최고의 감독 반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의 [3인조]가 개봉한 것도 97년이나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1998년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강변 CGV의 개관으로 극장가의 판도가 바뀌게 된 한해. 한석규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여전히 흥행세를 이어갔으며, 김지운 감독의 코믹 잔혹극 [조용한 가족]이 뜻밖의 깜짝히트를 치며 또다른 재목의 등장을 알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98년을 기억하게 했던건 제임스 카메론의 역작 [타이타닉]의 개봉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동시기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침몰직전의 위기에 몰렸으며, 뒤이어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 등 헐리우드 재난 영화의 융단 폭격이 이어졌다.


 

    1999년  


한국 영화계를 총결산하면서 동시에 밀레니엄의 축포를 쏘아올린 전환점. 강제규 감독의 액션물 [쉬리]가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버금가는 모양새를 갖추어 흥행에서 대성공으로 거두면서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을 단번에 갈아치웠다. 이로서 1백만 관객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당시의 개념을 송두리채 바꾸어 6백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한석규에 가려 만년 조연신세가 될 뻔했던 송강호와 최민식이 비로서 배우로서의 명성을 거머쥐었고, 한국 영화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된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쉬리]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인지, 그 어떤 해보다도 외화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로서 한국 영화는 전면적인 체질개선에 들어가 2000년대의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장진영과 전지현, 배두나, 이은주 등 재능있는 신인 여배우들의 등장을 예고한 것도 1999년이다.


어떤가? 기록이 새록새록 나지 않는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 세월이었지만, 그간 한국 극장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계속되고 있다. 헐리우드 대작속에서 꿋꿋히 버티면서 20세기의 마지막에 대세를 역전시킨 대목이 특히 더 감동스러운 것은 필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는 있지만 아직도 이 난관을 헤쳐나갈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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