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불가사리 - 북한의 블록버스터란 이런것이다

페니웨이™ 2007. 10. 2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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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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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다시금 거대 괴수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심형래 감독이 영구 아트무비를 설립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괴수 영화에 할애한 이력을 볼때 [디 워]의 기술적 발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죠. 물론 우리 국민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고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 영구아트무비 All Rights Reserved.

심형래 감독의 [디 워]. 다시금 괴수물이 활기를 띄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물론 이같은 괴수물의 인기는 일본에서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데, 혼다 이시로 감독의 전설적인 창조물 [고지라]로 시작해, [가메라],[킹기도라]와 같은 특촬물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연히 [고지라]는 미국의 헐리우드로 건너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 의해 [고질라]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되었죠. 물론 별 재미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Gozilla by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거대 괴수물의 메카인 일본. [고지라]를 비롯해서 수많은 괴수 캐릭터가 창조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괴수물은 알게모르게 영화사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물로서 비록 일본만큼의 호황을 누리진 못했지만 그 역사가 꽤 깊다는 사실에 놀라실 겁니다. 1962년 광성영화사에서 제작한 김명제 감독의 [불가사리]는 당시 최무룡, 엄앵란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등장하는 괴수물로서 한국 최초의 특수효과를 도입한 영화로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상당히 힘들어졌지만 어찌되었거나 한국영화사의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요.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그리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 광성영화사.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기엔 영화 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을 것 같은 북한에서 괴수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네 같은 [불가사리]라는 이름의 이 작품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한때 북한에 납치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던 신상옥 감독이 기획-제작을 맡았으나, 실제 영화상엔 크래딧을 올리지 않았던 [불가사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 만큼 야심차게 제작된 북한의 블록버스터급 영화입니다. 자그마치 1만명 이상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 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야심찬 제작에도 불구하고 [불가사리]는 신상옥 부부의 망명으로 인해 공개가 금지되었는데요, 이후 1998년 동경에서 일반인에게 상영되면서 비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흥미로운건 롤랜드 에머리히의 블록버스터 [고질라] 보다도 인기를 끌어서 일본에서의 흥행성적은 꽤 좋았다고 합니다.

물론 방심은 금물. 이 괴작의 정체를 알기 위해선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불가사리]는 2000년, 남북화해 무드를 타고 국내에서 극장 개봉도 했었고 TV로도 방영되었으며 비디오로도 나와있습니다. 다만 DVD로는 출시가 안되었는데요, 역시나 '괴수물의 왕국' 답게 일본에서는 DVD로 출시가 되어있더군요. 물론 한국어 더빙에 일본어 자막이 나옵니다. (1985년작임에도 일본에서 발매된 작품이라 그런지 화질상태가 매우 좋습니다) 구입하실분들, 일본 옥션을 뒤지시기 바랍니다. ㅡㅡ;;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All Rights Reserved.

역시 상품화의 왕국인 일본이다. 심지어 '불가사리' 피겨까지 시중에 판매중이다.



일단 이 작품은 스토리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시기는 고려말기 정도로 추정됩니다. 어디 중국의 6,70년대 무협물을 보는 듯한 코스튬이 벌써부터 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군요. ㅠㅠ 한 마을의 대장장이 할배가 자신의 대장간에서 일하는 인대라는 청년을 호되게 꾸짖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유인 즉슨, 인대가 '의적 두목' 인걸 숨기고 무기를 몰래 제작해 왔기 때문이지요.

6,70년대 중국 무협물에서나 나올법한 코스튬. 이게 정녕 80년대 영화란 말인가!


물론 할배는 인대가 악질 관리에게 맞서기 위해 선한 목적으로 의적단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너그럽게 봐주기로 합니다. 오히려 든든한 지원을 약속하지요. 그에겐 아미라는 딸이 있으나, 그녀와 인대를 혼인시켜주리라는 결심도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대는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보단 민중을 먼저 고려하는 마음에 정혼을 미루자고 합니다. 슬피 돌아서는 아미. 불쌍하지 않습니까?

근데 관군에선 이 사실을 알고 토벌대를 조직, 마을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모아다가 이 대장장이 할배에게 무기를 생산하라고 요구합니다. 인대를 잡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문자 그대로) 밥그릇까지 빼앗아 무기를 만들겠다니, 이를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할배는 모아들인 쇠붙이를 몰래 주민들에게 다 돌려주지만 이를 안 마을 관리는 노발대발해서 쇠붙이들의 행방에 대해 실토하라며 할배를 모진 고문으로 압박합니다. 심지어는 밥까지 굶기지요.

결국 할배는 고문과 배고픔에 못이겨 시름시름 앓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미가 동생과 함께 주먹밥이라도 넣어주려 했으나 거절당합니다. 결국 이 두 남매는 창살사이로 밥을 던집니다! 아부지 잡수시라고요. (그래도 어디 밥을...) ㅡㅡ;; 허겁지겁 밥을 주워서 입에 넣으려던 할배는 어차피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장인정신의 투혼을 발휘해 그 밥알을 뭉쳐서 100% 수작업 액션 피겨를 만듭니다.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All Rights Reserved.

100% 수작업으로 창조된 액션 피겨, 그 이름 불가사리!


그리고는 이름을 불가사리라고 짓고, 나대신 마을 사람을 보살펴달라며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지요. 아미 남매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고 손에 쥐어진 불가사리를 방안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그런데 아미가 바느질을 하다가 그만 손을 찔려 피가 불가사리에게 한방울 떨어집니다. 불가사리는 그 순간 생명력을 얻어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주위의 바늘을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그의 주식이 바로 쇠붙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불가사리는 주위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먹어치우고 급기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사형당하기 직전의 인대를 구출하는가 하면 의적단에게 음식을 공급하던 아미가 관군에게 체포될 위기에 이르자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기도 합니다. 이같은 불가사리의 활약에 인대는 불가사리를 의적단의 행동대장으로 삼습니다.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All Rights Reserved.

아미와 불가사리와의 단란한 데이트 ㅡㅡ;;


이제 관군은 불가사리 덕분에 박살이 납니다. 부패의 원흉인 마을 관리는 인대의 손에 처단되고 이를 안 조정에서는 당연히 이같은 하극상에 발끈해 반란 진압을 위한 군대를 파견합니다. 이제 마을 의적단과 정규군 사이의 싸움이 계속됩니다. 지루한 싸움끝에 결국 불가사리는 조정의 대궐까지 쳐들어가 궁궐을 부수고 왕을 한발로 깔아뭉개 버립니다. ㅡㅡ;; 그리고는 평화가 찾아오지요. (왕이 죽으면 나라가 망하게 생길 판인데 평화는 무슨 !)  


그러나 불가사리의 식욕은 멈추질 않습니다. 그래도 은인이라며 온갖 쇠붙이를 갖다 바치는 주민들이지만 아미는 불가사리가 머지않아 동지가 아닌 웬수로 변할 것을 직감합니다. 더불어 그를 방패삼아 이웃 나라를 침범하는 일도 분명히 생길거라는 우려도 생깁니다. 과연 아미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얼핏 보기엔 유치해 보이는 스토리 일지는 몰라도, 이 속에는 억압받아 온 백성들의 한(恨)과 위기의식이 고스란이 담겨있습니다. 관군들을 위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백성들의 하나뿐인 가마솥을 빼앗아가는 장면들은 민생따윈 안중에도 없는 오늘날의 현실정치와도 너무 닮아있지 않습니까?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All Rights Reserved.

1만명의 액스트라가 동원되었을 정도로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을 자랑하는 불가사리.


또 한가지는 먹을 것에 대한 위기의식입니다. 실제로 대장장이 할배는 (엊어맞은것도 있지만) 굶어죽습니다. 불가사리는 먹을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를 드러내며, 쇠붙이인 밥솥이나 식기류를 빼앗긴다는 건 말 그대로 식사할 수단을 잃는 것이지요. 이런 우려는 점점 현실화되어서 이제 북한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식량부족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참 서글픈 현실이 아닙니까? 불가사리는 바로 그러한 백성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존재이지요.

실제로 불가사리 전설은 고려 말엽~조선 초, 민심이 어지럽던 시기에 등장해 민간신앙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합니다. 국정이 어지럽던 시절, 가뜩이나 어려운 민생을 정치판의 밥그릇 싸움으로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던 당시의 상황이 십분 이해가 되지요. 오죽하면 '절대 죽일 수 없는(不可殺)' 괴물이 백성의 수호자가 되어주길 바랬겠습니까!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계급투쟁을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라고 해석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내가 표현하려고 한 진정한 주제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경쟁에 대한 경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주제의 영화를 북한에서 만들었다는 자체가 무척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영화 작가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소박한 전래동화를 소재로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주제를 전달하는 가능성을 시험해 본 것이다.

- 난, 영화였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중에서 신상옥의 회고



[불가사리]는 1985년 작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작품이니 만큼, 외적인 완성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당시에 북한에선 일본의 [고지라]를 만든 특수촬영팀을 초빙해 제작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무래도 요즘처럼 CG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괴물 코스튬을 뒤집어쓰고 연기하려니 참 어색하기도 했겠지요. 그래도 불가사리 역을 맡은 스턴트맨은 [고지라]를 비롯해 수많은 괴수물에서 경력을 쌓아온 사쓰마 겐하치로입니다. 켄하치로는 훗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고지라가 본 북한'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화제를 모은바 있습니다.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All Rights Reserved.

'김일성 훈장을 수여받은'의 압박 ㅡㅡ;;


대충 불가사리의 단독씬은 사람의 움직임 그대로이니 그런대로 봐줄만합니다. 반면 전투씬이나 군중들에 섞여 있는 모습은 사람들 뒤에 불가사리의 촬영분을 스크린으로 합성한 티가 역력한데, 뭐 지금이야 그냥 하나의 추억거리로 봐줄 수 있으니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지요.  아마 당시에 북한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입니다 ^^ 오히려 이같은 대작급 괴수물을 북한에서 만들었다는 시도 자체가 이슈이지 않았을까요? 그 의욕만큼은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P.S:

ⓒ Sheen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신상옥 감독은 나중에 [영웅 갈가메스]라는 작품을 통해 또한번 '불가사리'전설을 리메이크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잘 안알려졌지만요.


* [불가사리]의 모든 스틸,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디 워(ⓒ 영구아트무비 All Rights Reserved.), 불가사리(Tremors ⓒ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갈가메스(ⓒ Sheen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불가사라 1962(ⓒ 광성영화사. All rights reserved. 출처: 조선일보 광고)

* 참고문헌: 난, 영화였다(ⓒ 랜덤하우스코리아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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