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ㅅ

사도 - 한국 가정의 슬픈 자화상

페니웨이™ 2015. 11.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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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화변’. 즉, 사도세자의 아사 사건은 동서양을 통틀어서 온갖 싸이코들이 들끊는 왕가와 관련된 기록 중에서도 그 엽기성에 있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입니다. 차기 왕권을 바라보는 세자가 뒤주라는 공간에 갇혀 굶어 죽었고, 이를 지시한 인물이 다름아닌 왕이자, 세자의 친부라는 점은 인륜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참혹하기 이를데가 없지요. 따라서 이 사건은 후대에 이르러서도 수많은 궁금증과 추측을 낳았고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최근까지 가장 설득력을 얻었던 사관 중 하나는 <한중록>에 근거한 ‘사도 광증설’이었는데,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행각을 벌여온 세자를 영조가 보다못해 제거했다는 논조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척점에 선 것이 이덕일의 ‘노론 음모설’이죠. 영조의 정치적 부채인 노론과 대립각을 세우다 결국 정쟁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겁니다. 둘 다 흥미롭긴 하나 워낙 이와 관련된 사료가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저술한 주체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하다보니 어느 하나 왜곡이 없다 말할 수 없는 형편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준익 감독은 이 희대의 왕가 살인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일단 감독은 크래딧을 통해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과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에 모티브를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의 오프닝은 거사 직전까지 가는 세자의 모습을 비추며 <권력과 인간>에 기술된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요.

 

ⓒ (주)타이거픽쳐스(제작), (주)쇼박스(배급) All Rights Reserved.


[사도]는 거창한 음모론이나 사도세자 일개인의 비행에 무게중심을 두진 않습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건 영조와 세자사이의 가족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국의 왕위계승자로 태어난 세자가 왜 왕인 아버지와 대립하게 되었는지, 관계의 파괴 과정을 액자식 교차구성을 통해 추리극 형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뜻밖에도 영화에서 제시하는 원인은 현실 속의 가부장적 한국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공부만이 최선이라고 압박하는 아버지, 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점차 일탈하는 아들. 서로 소통하길 거부한채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마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현대 한국 가정의 자화상와 매우 닮아 있지요.

물론 여기에는 노론과 영조와의 불편한 동조관계, 여기에 사도세자와는 다른 기질을 지녔던 세손의 존재, 대리청정의 부작용 등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지만 2시간 가량의 영화 속에 이 모든 이야기를 상세히 담을 순 없었겠지요. 결국 이준익 감독은 이 전무후무한 폐륜범죄의 이면에 아들에게 실망한 아버지의 엄한 질책과 이를 견디지 못한 세자의 비행이 빚은 비극으로 이 사건을 해석합니다.

"아들을 그렇게 참혹한 방법으로 죽인 아버지에겐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점을 설명하기엔 다소 비약적이긴 해도 중간중간 넣어 놓은 부수적인 요소들과 결합해 왕가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적인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는 출중합니다. 두 주연급 배우는 물론이고 어지간한 영화들에 주연으로 나서도 될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여기에 사극을 맛깔나게 다룰 줄 아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이 더해져 영화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놓았음을 부인할 수 없죠.

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특히 정조가 등극하고 난 이후의 사족은 불필요하다 싶을 만큼 긴 편인데, 극의 흐름에 크게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여운의 맛을 없애더군요. 게다가 시간상의 긴 흐름 때문에 불가피하게 노인 분장을 한 배우들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아 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도]는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깔끔한 사극입니다. 전형적이면서도 기본기를 잃지 않았고, 액자식 구성도 영화의 내러티브와 좋은 호흡을 이룹니다. 엔딩만 어떻게 좀 했더라면 간만의 걸작이 될 수도 있었던 작품일텐데 말입니다.

P.S:

1.캐스팅이 진짜 좋았던 작품 같습니다. 특히 정순황후역의 서예지는 굉장히 짧은 출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분량이 좀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더군요.

2.한석규와 송강호.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역할을 맡았다는게 흥미롭습니다. 한 사람은 TV로 한 사람은 극장영화로. 약 15년 전 둘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더욱 아이러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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