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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 일본 서브컬처에 대한 값비싼 오마주

페니웨이™ 2013. 7.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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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던가요. 우리의 가슴속에 거대로봇이 살아 숨쉬게 되었던 것이. 저의 경우에는 흑백TV를 통해 [마징가 제트]를 처음 보게 된 그 순간이었을 것이고, 암흑의 80년대를 살았던 분들이라면 [메칸더 브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90년대의 유년기를 보낸 사람에게는 [슈퍼그랑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거대로봇에 대한 또다른 로망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두 말할 것 없이 그 기폭제는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 였구요. 진부한 얘기일지는 몰라도 [트랜스포머] 1편은 유년시절의 꿈과 로망을 실제 화면으로 나타내준 그야말로 드림무비 였습니다. 단지 화면만 좋았던게 아니라 캐릭터의 구성이나 허왕되지만 그럴싸한 이야기, 그리고 화면을 압도하는 로봇의 존재감이 착착 맞아 떨어진 오락물이었죠. 2,3편은 캐망이라고 해도 제가 1편만은 높게 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트랜스포머]는 양날의 검입니다. 확실히 [트랜스포머] 이후에 거대로봇물의 실사화에 대한 바램들이 커졌고, [볼트론]이니 [로보텍]이니 하는 작품들의 제작발표가 있긴 했어도 실제 결과물이 나온건 전무합니다. 어떤 작품이 나오든지 간에 이는 [트랜스포머]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피할 수 없었을테니 그 영향력 밖으로 나오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리즈의 2,3편도 1편에 비해 상당한 비판를 받아야만 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볼때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은 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거대로봇의 재림이라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괴수 vs. 로봇이라는 진보된 테마를 선택했거든요. 이런 장르물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군침을 질질 흘밀한한 일입니다. 게다가 감독은 [판의 미로]의 길예르모 델 토로란 말입니다. 8천만 달러로 [헬보이 2]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니 1억 9천만 달러를 가지고 과연 어떤 비주얼을 만들어 놓을지 상상만해도 흐뭇하지 않습니까.

ⓒ Warner Bros., Legendar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퍼시픽 림]은 단점과 장점이 너무나도 뚜렷한 영화입니다. 일단 스케일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서는 성공입니다. 이 영화처럼 압도적인 비주얼을 선보이는 작품은 앞으로도 드물겁니다. '사이즈가 문제다'라는 슬로건으로 건방을 떨었던 [고질라] 쯤은 가볍게 밟아줍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괴수와 엉켜서 건물들을 때려부수는 파괴의 쾌감은 역대 최강급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독이 영화의 셀링포인트를 이 부분에 맞췄다면 뜻한 바를 다 이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러 저러한 전후사정의 전개없이 달랑 몇분간의 나레이션이 끝나자 마자 곧장 괴수과 로봇의 전투로 돌입합니다. 마치, '어차피 관객이 목적이 그거 아니냐'는 듯이 말이죠. 이후 쉬는 텀이 조금 길긴 해도 영화의 전투씬에서 보여지는 괴수와 로봇은 시종일관 크고 아름답습니다. 아마도 감독 자신이 좋아했던 괴수영화나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모든 애정을 쏟아부은 것처럼 보입니다.

ⓒ Warner Bros., Legendar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관객의 기대치에 맞춰 볼때 [퍼시픽 림]이 대중영화의 본연에 충실한가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영화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멍청한 각본들을 답습해 나가긴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야기가 정형화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괴수물의 클리셰를 그대로 끌어오다보니, 단점들까지 고스란히 복제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괴수물이나 로봇물의 마니아들이라면 눈딱감고 봐줄수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들이 그렇게까지 관대할 거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심각할 정도로 설렁설렁 건너뛰는 스토리에 더해 매력적인 캐릭터가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마치 롤랜드 에머리히의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적어도 감정이입할 수 있는 메인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은 그저 로봇의 파일럿일 뿐입니다. 각자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별로 공감할 순 없습니다. 슈퍼스타급 배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랜스포머]를 생각해보면 꼭 무명배우들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죠. 연출을 하면서 캐릭터에 전혀 신경을 안 쓴겁니다.

ⓒ Warner Bros., Legendary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쯤되면 여름철 블록버스터에 뭐 그리 바라는게 많냐는 얘기도 나올만 한데요.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퍼시픽 림]은 단점과 장점이 너무나 뚜렷한 영화라는 겁니다. 문제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관객들이 장점에 주목할 것인지, 아니면 단점에 더 주목할 것인지 하는 점이겠지요.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부디 흥행에 성공해서 다른 로봇 영화들의 제작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되었으면 합니다만 마냥 낙관하기에는 영화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는게 걸리는군요.

P.S:

1.길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치곤 얌전한 편입니다다만 그래도 괴물의 내장들을 가지고 하는 짓꿎은 농담은 여전하더군요.

2.집시 데인저 출격시 A.I의 여자 목소리가 낯익다 싶더니 밸브 코퍼레이션의 게임 '포털 2'에서 보스 '글라도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엘렌 맥클레인이더군요. 델 토로 감독의 깨알같은 오마주.

3.이미 예고편을 봐서 아시겠지만 예거의 조종방식은 [에반게리온]이나 [마징가]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아이언 머슬](리뷰 바로가기)의 모션 트레이스 방식에 가깝지요.

4.비록 바이럴이긴 하지만 각국의 로봇들 중에 한국이 빠진건 좀 서운하더군요. 우리도 로봇하면 꽤 일가견이 있는데 말입니다. 자세한건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한국 슈퍼로봇 열전]을 참조하세요. 쿠쿠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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