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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 멜로물도 류승완의 손에서는 액션영화가 된다

페니웨이™ 2013. 2.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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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총기류를 동반한 액션영화를 만들만한 소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저씨]같은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고, 대부분은 남북의 대치상황에 기반한 형태로 가는게 가장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쉬리]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액션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레임을 벗어난 대부분의 영화들은 실패했습니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은 [쉬리] 이후 남북한 대치상황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물론 그 후로 한국영화의 파이가 엄청나게 커져버렸고 가용할 수 있는 배우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연출의 기법도 헐리우드의 그것에 근접해가는 마당에 [베를린]은 한국 영화의 현주소,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한국 액션영화의 현주소를 가늠하기 좋은 척도가 될만한 작품이죠.

사실 류승완 감독이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시원하게 실패를 경험했을때 내심 한국 영화계에서 흔치 않은 장르물 감독이 이대로 주저앉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부당거래]로 다른 식으로의 진화, 내러티브와 스토리를 강화하면서 액션에 있어서도 약간은 겉멋을 뺀 모습으로 관객을 놀래켰습니다. 그리곤 올해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들고 돌아왔죠.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요.

영화는 기대만큼 훌륭합니다. 여기서 ‘기대’라는 말은 범국민적 차원의 기대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온전히 류승완 감독에게 바라는 관객들의 기대이지요. 그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액션키드로 군림했고 흥행여부를 떠나 한우물만 꾸준히 판 감독이니까요. [베를린]은 어쩌면 그가 연출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잡았을 때 보여주고 싶은 모든 걸 쏟아부은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 CJ Ent./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이미 기자시사회등을 통해 ‘본 시리즈’에 비견될만한 한국 액션영화의 탄생이라고 회자될 만큼 [베를린]은 최근 영화들의 트렌드인 리얼 액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물을 이용한다거나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악!’ 소리가 날 만큼 타격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런 액션씬이 팍팍 튀어나옵니다. 총기액션도 예전의 딱총쏘던 그 시절의 모습이 아닙니다. 10여년전 [쉬리]의 도심 총격씬이 [히트]의 어설픈 카피라는 평을 들었다면 [베를린]의 액션씬들은 카피라는 말은 들을지언정 어설프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액션의 완성도는 높은 편입니다.

첩보물이라는 서브 장르의 영역에서도 [베를린]은 꽤 쓸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적당한 반전도 있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남북한 현실적인 모습이 제법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온전한 첩보물로서 [베를린]은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닙니다. 쓸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뿐, 이 재료를 완벽한 요리로 탈바꿈 시키기엔 영화가 가진 단점이 적지 않거든요.

초반부에 너무 정신없이 줄거리를 꼬아버리는 바람에 꽤 머리가 아프고 (물론 중반부터는 자연스럽게 이 두통이 해결은 됩니다), 극장마다 편차가 있긴 합니다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사항 중 하나인 대사전달의 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초반부를 더욱 집중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공들여 놓은 캐릭터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소모되는 듯한 느낌 또한 그리 달갑진 않습니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베를린]은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적어도 액션의 밀도와 정교함 만큼은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겨뤄볼만하니까요.

ⓒ CJ Ent./외유내강. All rights reserved.

이제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전문 액션배우가 아님에도 하정우가 보여주는 열연은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멋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좇기는 역할은 [황해]이후 아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듯 해요.

전지현은 그간의 논란을 씻어버리고 자신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배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지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점은 연기력이 아닌 미모니까 말이죠. 무심한 남정네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그녀의 캐릭터는 [베를린]에서 가장 동정심을 유발합니다.

류승범 또한 그에 어울리는 역할로 돌아왔습니다. 적당히 건달같고 적당히 야비한 그런 악당으로 말이죠. 제이슨 본 급인 하정우의 맞수로 등장하기엔 조금 가벼운 감도 없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류승완 감독의 영화속에서 류승범은 자신의 역할을 잘 찾아 가는 것 같습니다.

한석규에 대해서는 조금 불만입니다. 굉장히 많은 잠재력과 재능을 지닌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한석규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단 캐릭터 자체가 소모적이며, 진부합니다. 가끔씩 던지는 찰진 욕설을 빼면 이번 작품에서 한석규가 보여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꼬집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기의 스펙트럼이 갑자기 확 축소되어 버린 느낌이랄까요.

단점도 있고, 독창성이 떨어지는 영화임엔 분명하지만 남녀간의 멜로극마저도 액션영화로 승화시키는 류승완 감독의 뚝심만큼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놀라운건 류승완 감독이 이제 겨우 마흔을 갓 넘긴 나이라는 것이죠. 미래를 생각한다면 한국 액션영화의 앞날은 온전히 그의 손에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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