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독수리 5형제 (1980) - 오리지널을 능가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설

페니웨이™ 2011. 10.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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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19

 

 

 

 

 

국내에서는 [독수리 5형제]로 더 잘 알려진 [과학닌자대 갓챠맨 科学忍者隊ガッチャマン]은 [신조인간 캐산], [테카맨], [타임보칸] 시리즈와 더불어 타츠노코 프로덕션을 일본 슈퍼히어로물의 명가로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도 TBC 방송국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일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요. 외계에서 온 총통 X의 범죄집단 알렉터에 맞서 싸우는 다섯명의 개성강한 캐릭터, 불새로 변신하는 갓피닉스의 위용 등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내용이 다음회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과학닌자대 갓챠맨]은 1972년 TV판 시즌1이 방영된 후 1978년에 극장판과  TV판 시즌2에 해당하는 [과학닌자대 갓챠맨 II]가 방영되었고, 이듬해 시즌3인 [과학닌자대 갓챠맨 F]와 1994년 리메이크판 OVA 그리고 얼마 전에는 IMAGI사의 극장판 CG 애니메이션이 기획되는 등 시대를 초월한 대형 프렌차이즈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후에 제작된 수많은 전대물의 컨셉에도 큰 영향을 주었지요.

ⓒ TATSUNOKO Production. All rights reserved.


이 같은 [과학닌자대 갓챠맨]의 인기를 반영하듯 국내에서는 1976년 한하림 감독의 [철인 007]이란 작품을 통해 ‘독수리 5형제’ 캐릭터를 4명으로 줄여 표절하기도 했었고, 1979년에는 김태종 감독의 [태극소년 흰독수리]라는 작품이 개봉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놀랄만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이규홍 감독의 1980년작 [독수리 5형제]라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작품은 말이죠, 앞서 언급한 [과학닌자대 갓챠맨]의 계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오직 전세계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개봉되었던 [독수리 5형제] 극장판입니다. 지금까지 [과학닌자대 갓챠맨]의 극장판은 1976년에 만들어진 단 한작품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독수리 5형제]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지요.

ⓒ 삼정기획. All rights reserved.

초록빛의 아름다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악의 화신 총재 X가 은하계 너머 먼 우주에서 날아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호화여객선 퀸메리호가 침몰당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소년 마르코는 총재 X에게 납치되어 인간성장기계에 들어가 어른이 되어 범죄조직 알렉터의 사령관 겔사드라가 됩니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결성된 독수리 5형제에게 패배를 거듭한 겔사드라는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를 건설해 독수리 5형제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데 과연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는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갈까요?

ⓒ 삼정기획. All rights reserved.

아마 [과학닌자대 갓챠맨]의 팬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국의 [독수리 5형제] 극장판은 TV판인 [과학닌자대 갓챠맨 II]의 시나리오에 기초해 있음을 눈치챘을 겁니다. 한국판에서는 사미 판도라의 이름을 마르코로 바꾸었고 성별도 여자에서 남자아이로 바꾸었지만 기본적인 줄거리와 에피소드는 TV판 시즌2에서 따온 것이지요.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전 작화를 모두 새롭게 그렸습니다. 다시말해 [비디오 레인저 007]처럼 콘티와 동화를 그대로 가져다가 짜깁기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공정을 모두 새로 만들었다는 얘기이지요. 더 놀라운건 이러한 작화 중 일부는 실제 방영되었던 TV판에 비해서도 더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 TATSUNOKO Production/삼정기획. All rights reserved.

[닌자과학대 갓챠맨 II]와 [독수리 5형제]의 비교샷. 왼쪽이 일본판 갓챠맨, 오른쪽이 한국판이다.


뿐만 아니라, TV판과는 달리 극장판 [독수리 5형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한 박력과 하드보일드한 스타일로 밀어붙입니다. 다소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던 엔딩의 경우도 극장판에서는 ‘독수리 파이터’를 시전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그야말로 열혈극의 진수를 보여준달까요. 후반부부터 엔딩까지의 완전히 새롭게 짜여진 연출 스타일은 오히려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이쯤되면 단순히 [독수리 5형제] 극장판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데요, 워낙 표절과 도용이 난무하던 암흑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이 작품도 당연히 하청업체에서 미리 받은 콘티를 기초로 리테이크시 버려진 작화를 살려서 만든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합니다만 (실제로도 그렇게들 많이 알고 있고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추후 수정 및 첨삭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믿을만한 제보에 의하면 진실은 이렇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이 1970,80년 당시 아슬아슬하게 표절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의 어마어마한 량의 작품들을 하청받아 단기간에 고퀄리티로 작업해주는 국내 업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차원에서 묵인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OEM 업체들은 일본측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편 [과학닌자대 갓챠맨 II]의 OEM을 담당했던 삼정기획에서는 1979년 10월 24일부터 1980년 8월 27일까지 TBC에서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던 [독수리 5형제] 시즌1의 인기를 감안, 타츠노코 프로덕션측에게 한국판 [독수리 5형제]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는데, 한국 하청팀의 수고를 인정해 준 타츠노코 측에서 이것을 수락하면서 대단히 이례적으로 정식 허가를 받은 일본 캐릭터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 부분은 당시 현장 OEM에 참여했던 스탭의 증언으로 알게 된 내용인데, 아마도 신빙성 있는 내용이라 판단됩니다. (물론 워낙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이라 일말의 의심이 완전히 가신건 아닙니다만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본 작품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할 작품이 되는 겁니다)

 

ⓒ 삼정기획.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독수리 5형제] 극장판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후로는 보기 힘든 작품이 되었고, 다른 국산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작품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사람들이 막연히 일본 작품을 도용한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쨌든 괴작이라면 이런 기이한 이력과 내용쯤은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의미가 되었건 나쁜 의미가 되었건 [독수리 5형제] 극장판은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공개되었던 전설속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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