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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잭 블랙이 이미지를 소비하는 법

페니웨이™ 2011. 1.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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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걸리버 여행기]는 지금까지 20여편이 넘는 TV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닳고 닳은 이야기입니다.  소인국 릴리풋에 도착한 걸리버가 뜻하지 않게 거인행세를 하며 왕국의 일에 관여하게 되는 모험담을 그린 이 소설은 아동용으로 각색된 버전이 더 많이 알려진 탓에 원작이 지녔던 인간 혐오적인 날카로운 풍자성은 대중에게 크게 부각되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제작된 [걸리버 여행기]가 개봉된다고 했을 때 기존 작품들의 틀을 깨고 조금은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지 않았습니다. 고전의 현대적 컨버전이 성공을 거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원작의 무게감을 생각해본다면 지금쯤은 이례적인 수작이 나와준다해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주연배우가 잭 블랙이고 제작까지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땐 그런 기대를 접었지만요. 물론 정극연기에서도 기대치 않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잭 블랙이지만 예상처럼 영화는 전형적인 잭 블랙식 코미디를 선택했습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 Reserved.


[걸리버 여행기]는 원작의 설정을 21세기의 현대로 바꾸어 전개해 나갑니다. 주인공 걸리버(잭 블랙 분)는 [스타워즈] 오타쿠에, 빌딩의 우편물 관리자로 10년째 전혀 장래성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심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소심하기는 또 얼마나 소심한지, 5년째 짝사랑만해오던 여성인 달시(아만다 피트 분)가 시간있냐고 넌지시 마음을 떠봐도 '바쁘다'며 정색하는 답답한 친구지요. 그러던 어느날 그는 달시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인터넷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여행기를 제출한 것을 계기로 버뮤다 삼각지대를 탐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는 정체불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소인국인 릴리풋에 도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뭐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토리인 탓에 굳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걸리버 여행기]에서 초점을 맞춘건 루저가 자신감을 얻었을 때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뭐 그런 통속적인 주제의식입니다. 당연히 그 루저 역에는 딱 보기에도 땅딸보에 찌질해 보이는 잭 블랙이 적역인 셈이지요. 사실 잭 블랙은 영화의 99%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잭 블랙의 이미지를 마음껏 소비하며 관객들을 시종일관 B급 유머의 바다에서 헤엄치도록 만듭니다.

여성관객들의 입에서 '어우~~'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만큼 끔찍한 화장실 유머는 기본이요, 'G패드'나 '걸빈 클라인' 같은 각종 상업 브랜드의 패러디에 더해 [스타워즈], [타이타닉], [로미오와 줄리엣], [트랜스포머] 등을 패러디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허를 찌르는 웃음을 선사합니다. '가바타'가 등장하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빵 터지고 말았어요.

ⓒ 20th Century Fox. All Right Reserved.


그러나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이러한 잭 블랙의 유머에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짐을 덜어줄 만한 서브 캐릭터나 영화적인 장치가 거의 전무하다는 건 이 작품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3D라는 기술적 외형은 그저 페이크에 불과해요. [걸리버 여행기]는 3D없이 즐겨도 전혀 지장이 없는 영화입니다. 1인 코미디에 익숙한 잭 블랙의 상품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기존 영화들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건 최근 한국배우 임창정이 동일한 이미지의 과잉 반복으로 식상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과 유사한 패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얼마전 발표한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잭 블랙이 올랐다는 건 그러한 우려의 증거입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논리적인 기승전결이나 색다른 주제의식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실 전쟁놀이로 세월을 보낸 두 왕국을 화해시키는데 잭 블랙의 노래 한방으로 해결된다는 마무리는 정말이지 황당할 따름이거든요. 그저 90분간 웃고 즐기다가 나오자는 생각이라면 크게 후회할 건 없겠습니다만 문제는 1인당 16000원이나 되는 거금을 투자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아바타]의 상업적 성공이 관객의 호주머니 사정을 봐주지 않게 된 작금의 현실은 정말 재고해봐야 할 문제같습니다.


P.S:

1.요즘 자꾸 지적합니다만 번역 좀 제발 신경 씁시다. 어떻게 하면 'Beast'가 '괴물'이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Beauty and the Beast'는 '미녀와 괴물'로 번역해야 합니까? 게다가 극 중 걸리버는 [스타워즈]의 덕후란 말입니다. '밀레니엄 팰콘이 그립지 않나요?'를 어떻게 그런식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까? 제발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2.아이폰의 PPL는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전세계 공통으로 아이폰 사용자라면 귀에 익숙한 문자착신음만으로도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니 말입니다. ㄷㄷㄷ

3.걸리버 하니까 제가 최초로 사용했던 PCS폰의 브랜드가 생각나더군요. 지금은 사라진 현대통신에서 만들었던 휴대폰 브랜드 중에 '걸리버'가 있었죠. 당시 CM송은 이렇습니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 아... 썰렁하다.

4.영화 시작전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너무 좋았습니다. [아이스 에이지]의 감초 스크랫의 슬랩스틱을 제대로 보여주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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