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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 류승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하다

페니웨이™ 2010. 11.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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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몇번인가 류승완 감독을 만나 싸인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싸인을 해주곤 한다. '영화 만드는 류승완'. 류승완 감독 하면 국내 영화계에서도 알아주는 장르영화 감독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시네마 키드다. 그의 충무로 입성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그것과도 닮아있는데다, 투자자들의 성향보다도 자기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작품들을 만들어 온 뚝심있는 감독이라는 점에서도 컨텐츠의 생산자라기 보다는 소비자로서의 동질감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류승완 감독의 열성팬이라거나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그런 충성파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몇가지 아쉬움 가운데는 먼저 지나치게 가공된 작위적인 캐릭터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고, 또 장르영화안에서의 실험정신은 투철한 편이지만 그러한 실험들이 어떤 틀을 파괴하는 그러한 큰 스케일의 범주에는 들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에서의 한계가 느껴진다는 점이 되겠다. 이러한 핸디캡을 오히려 극대화시켜 장점으로 희석시키려 했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른 관객들은 내 생각에 그렇게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나 보다.

세상은 냉정하다. 실력 하나만으로 발탁된 류승완 감독에게 그의 재능만 믿고 섣불리 투자하기엔 [다찌마와 리]의 흥행실패가 꽤나 큰 걸림돌이 된 듯 하다. 야심차게 기획중이던 [야차]는 거의 물건너가다시피 했고, 2년간의 공백기간 중 그가 맡은 작품은 모토로라의 30분짜리 애드무비 [타임리스] 한 편 뿐이었다. 한국이란 역동적인 사회에서 오랜 침묵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류승완 감독도 느낀 것일까? 그가 새롭게 들고 나타난 [부당거래]는 분명 기존의 류승완표 영화와는 다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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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유내강. All Right Reserved.


우선 그는 자신이 줄기차게 고집했던 액션영화의 장르적 틀을 벗어 버렸다. [부당거래]는 그가 처음 내놓는 현실고발의 풍자극이자 정치 스릴러다. 아니, 엄밀히 말해 정치 운운하기에는 조금 그 대상에서 떨어져 있긴 하다만 상류층과 공직사회의 더러운 유착관계를 파헤치고 은막 뒤에서 오고가는 권모술수와 온갖 비리를 고발한다는 면에서 이 영화의 정치적 성향을 부정하긴 힘들다. 말은 안해도 다 알고있지 않나. 이 영화가 18세 관람가를 받은 이유를.

사회를 충격으로 몰고간 여아 성폭행 살인사건. 대통령이 대국민 퍼포먼스까지 펼친 만큼 관계부처에는 비상이 걸렸다. 근데, 유력한 용의자를 뒤쫓던 형사가 개인적인 원한에 사무친 나머지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피의자를 현장 사살한다. 이제부터 사건이 꼬인다. 경찰 수뇌부는 이 사건을 덮기 위한 적임자를 고르는데 골몰하고 이 과정에서 광역수사대 최철기 반장(황정민 분)을 지목한다. 딱히 비리경찰은 아니지만 비 경찰대 출신의 최 반장이 겪고 있는 출세문제와 처남이 연루된 뇌물사건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사건해결에 대한 반대급부로 출세를 보장받은 최철기는 여아 살인사건의 범인을 '연출'하기 위해 조폭 출신의 장석구 회장(유해진)과 손을 잡는다. 자신의 라이벌인 김 회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장석구에게는 나쁜 제안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스폰서인 김 회장을 비리 혐의로 구속시킨 최철기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젊은 검사인 주양(류승범 분)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최철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 검사는 최 반장과 김 회장의 관계에서 심상찮은 조짐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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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유내강. All Right Reserved.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여론을 잠재우려는 경찰, 스폰서와의 유착관계를 통해 잇속을 챙기는 검사, 권력에 기생하며 사업을 확대하는 검은 기업가. 이들이 서로를 엮어가며 만들어내는 부당거래는 어찌보면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이야기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법의 공정성이 상실된 대한민국의 현 주소니까. [부당거래]가 놀라운 점은 이러한 공공연한 비밀을 현실적인 테두리내에서 설득력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류승완 작품과는 달리 [부당거래]는 과장됨이 없이 무척이나 세밀한 연출기법을 사용했다.

젊은 감독의 작품답게 호쾌하며 도전적이고 속도감이 넘치는 영화라는 점은 이 영화의 플러스적인 요소다. 간혹 류승범이 보여주는 개그씬이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서도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비장하며 필사적이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가장 강한 영화이지만 짧고 깔끔한 액션씬이 중간중간 들어 있어 역시나 자신의 특화된 장르영화의 요소를 놓치지 않는 류 감독의 영민함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아쉬움도 없진 않다. 촘촘한 내러티브에 빠른 전개과정으로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지만 후반부에 너무 긴 사족을 집어 넣어 전체적은 호흡을 늘어뜨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의도야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결말부분은 너무나도 현실의 그것과 맞닿아 있어 영화적 엔딩의 미덕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굉장히 부담스런 마음을 가지고 자리를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의 전환점을 마련할만큼 충분히 잘만든 영화다. 지금까지의 류승완이 그저 '영화 신동'이라는 허울좋은 칭호에 가려진 충무로의 기대주였다면 이제는 중견 영화감독으로의 도약점에 선 장인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때다.


P.S:

1.여전히 무술감독은 정두홍이지만 스타일이 바뀌었다. 기존의 빙글빙글 도는 뺑뺑이 액션에서 구차스런 몸동작을 제거하고 짧고 강렬하게 연출한 몇몇 연출씬은 이제야 한국영화의 액션이 발전하는구나를 느끼게 한다.

2.언론에서 이 영화를 좋게 볼지는 미지수다. 황정민과 유해진이 밀담을 나누는 빌딩 옥상은 말하자면 부패의 온상 같은 상징성을 띄는데, 그 옥상 건물 건너편으로는 조선일보의 사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시민들이 보는 신문은 한겨레와 경향일보다. 나는 모르겠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3.[와아키키 브라더스], [사생결단] 이후 또한번 한 스크린에서 만난 황정민과 류승범. 암만봐도 상성이 잘 맞는 배우다.

4.까메오 이준익 감독. 넘 어색해요. ㅠㅠ

5.한국영화에서의 욕설은 참 언제 들어도 불편하다. 그렇기에 어떤 면으로는 이 영화의 18금 판정에 큰 불만이 없다.

6.개인적으로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 ' 참~ 열심히들 산다!' 뒤집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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