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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 - 누가 이 영화를 괴수물이라 하는가?

페니웨이™ 2009. 7. 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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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작 [킹콩]은 괴수물, 더 넓게는 크리처물의 대중화를 알리는 시발점으로서 큰 의미를 남겼다. 이후 수많은 아류와 모방작들을 배출해 내면서 크리처물은 장르영화로서의 도약을 이룩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특수효과와 일반 드라마에 비해 세심한 미장센이 요구되는 장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크리처물은 한동안 B급 저예산 영화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나마 일본에서는 1954년에 혼다 이시로 감독이 [고지라]를 통해 괴수물의 또다른 가능성을 열어놓긴 했지만 이는 일본내의 특촬물 장르의 국지적인 발전으로 제한되었고 특촬물 또한 B급 장르의 하위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1962년 김명제 감독의 [불가사리]라는 작품이 개봉되었는데, 당시 최무룡, 엄앵란 등의 스타급 배우들이 등장하는 괴수물로서 한국 최초의 특수효과를 도입한 영화로도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2006년작 [괴물]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영화에서의 괴수물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장르였다.

한편 스티븐 스필버그의 1975년작 [죠스]는 크리처물의 대형화가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점에서 블록버스터라는 단어의 기원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죠스]의 성공을 계기로 1976년 [킹콩] 리메이크를 비롯해 메이저 영화사에서 차츰 크리처물의 메이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런 메이저급 크리처물의 성공은 장르영화의 특성상 질낮은 아류작들의 범람이라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았고, 이는 크리처물을 다시금 B급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의 크리처물은 메이저 영화와 저예산 영화가 공존하는 가운데 상호보완적인 균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처럼 크리처물이 B급영화의 영역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데에는 태생적으로 크리처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저예산의 향기가 베어있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괴수 어드벤처'를 표방하고 있는 [차우]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크리처물로서 한국영화의 위기론이 깔려있는 이 시점에 장르영화의 확산이라는 측면으로 보자면 대단히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게다가 등장의 주체가 멧돼지라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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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수작/ 롯데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극장안에 입장해 감상을 시작한지 15분 정도 흐르고 나자, '어? 이거 뭔가 이상한데?' 라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차우]는 홍보사가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괴수물'의 기대치에서 한참을 벗어난 영화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든 정통과 이단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차우]는 이단쪽에 가깝다.

우선 이 작품은 [시실리 2Km]를 연출했던 신정원 감독의 영화다.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잠적한 배신자와 이를 쫓는 조폭들간의 범죄물처럼 시작했던 [시실리 2Km]는 이내 [조용한 가족]류의 블랙코미디로 바뀌더니만 어느덧 처녀귀신과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는 순정남의 연애물로 전환되는, 실로 난해하기 이를데 없는 장르 파괴의 실험장을 연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차우]도 겉으로는 괴수물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을 지언정, 4차원적 코미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변칙적인 장르영화라는 면에서 [시실리 2Km]와 흡사하다. 멧돼지의 시각에서 사물을 비추는 초반부의 비주얼과 희생자의 발생을 시작으로 일반적인 괴수물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스토리의 전개는 꽤 근사한 한국형 괴수물이 시작될 것 같은 기대감을 일으키지만, 이윽고 영화는 느닷없는 폭소의 도가니로 관객들을 밀어넣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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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수작/ 롯데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그 놈은 꼭 제 손으로 잡을 겁니다!'. [차우]의 캐릭터 포스터 중 엄태웅의 사진에 적혀있는 문구. 이 문구를 보면 엄태웅이 마치 엄청난 사명감에 사로잡혀 멧돼지를 뒤쫓는 열혈 캐릭터처럼 생각되지만 막상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므로 당황하지 말 것. 영화 속에서 엄태웅은 멧돼지 사냥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으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기위해 산에 들어왔다가 얼떨결에 멧돼지 사냥팀과 엮이게 된다. 이 영화의 홍보컨셉이 실제 영화와 얼마나 큰 괴리감이 있는지를 실감케하는 대목.


끊임없는 말장난과 만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코미디는 '괴수 어드벤처'라는 홍보사의 전략적 카피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관객들을 헷갈리게 한다. 오히려 신정원 감독의 이러한 방향성은 막연히 정통 괴수물의 기대치에서 [차우]를 보고자 했던 관객들의 관심사를 교묘히 돌려놓는다는 면에서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그래, 멧돼지를 얼마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내가 평가해주지'라는 심정으로 CG의 완성도에 대해 비판의 날을 날카롭게 세울 준비를 한 관객들이 허탈감을 느낄 만큼 CG 사용의 비중이 크지 않다. 말하자면 CG가 엉성하더라도 이에 불만을 터트릴 이유를 주지 않는다는 거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 낯설지만 독특한 유머의 바다에서 뜻밖의 웃음을 터트릴 기회를 얻는다. 문제는 이러한 유머 코드가 100이면 100 전부 적중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 가령 '내가 유인원이야? 맨날 유인만하게' (뭐 대충 이와 비슷한)와 같은 의도적인 유머의 사용에도 관객들의 폭소가 터져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속에서 유머의 과잉이 느껴진다는 증거이자, 플롯과도 다소 엇박자를 이루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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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수작/ 롯데 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여러 버전의 [차우] 포스터가 나와 있지만 유일하게 이 버전만이 영화의 '진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따라서 아직 [차우]를 감상하지 않은 분이라면 두 가지만 기억하자.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경험한 매끄러운 완성도의 한국형 괴수물은 결코 아니라는 점, 그리고 코미디는 코미디인데 취향에 안맞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죽도밥도 아닌 영화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 분명한 건 [차우]의 컨셉 자체는 신정원 감독의 취향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며 이 점은 [차우]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인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거다.

어쨌거나 얘기치 못한 유쾌함을 제공함과 동시에 변칙장르의 메인 컨셉으로 괴수물을 선택했다는 점은 [차우]의 평가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더군다나 장르적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한국영화계에서 이러한 영화가 오히려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길 바랄뿐이다.


P.S

1.영화가 끝나고 쿠키가 있으니 서둘러 자리를 뜨지 말 것. 의외로 재밌다.

2.마을 이장으로 나온 배우, 왠지 중간에 흐지부지 된 캐릭터인데 (사실 [차우]에는 소모적인 캐릭터가 많다) 여기에서 코믹한 이미지만을 제거한다면 윤태호 작가의 [이끼] 영화판에서 이장역을 맡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정재영은 아무래도 그 역할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단 말이지...

3.왠지 아쉬워 할 분들을 위해 진짜 멧돼지 괴수물 하나를 조만간 소개해 올리겠다.


* [차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영화사 수작/ 롯데 엔터테인먼트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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